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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북민 이순실 씨의 이야기는 단순히 한 개인의 삶을 넘어, 북한 체제 아래에서 고통받는 많은 사람들의 현실을 대변합니다. 그녀는 9번의 탈북 시도 끝에 한국에 정착했으며, 현재는 연 매출 100억 원의 성공적인 사업가로 자리 잡았습니다. 이번 글에서는 이순실 씨가 겪었던 고난과 역경, 그리고 이를 극복하고 새로운 삶을 시작한 이야기를 친근한 말투로 풀어보겠습니다.
이순실의 유년 시절과 군 복무
이순실 씨는 1967년 2월 5일, 북한 평양에서 태어났습니다. 그녀의 아버지는 군관, 어머니는 군단장 요리사로 비교적 안정적인 환경에서 자랐습니다. 하지만 북한 경제가 점차 악화되면서 그녀의 가족도 어려움에 처하게 되었습니다.
이순실 씨는 고등중학교를 졸업한 후, 1982년 조선인민군 간호장교로 입대해 11년 동안 복무했습니다. 그러나 군 복무 시절에도 그녀는 극심한 경제난 속에서 월급 2원 50전으로 생계를 유지해야 했습니다. 당시 쌀 1kg의 가격이 120원이었으니, 그 돈으로는 생존조차 어려웠습니다. 군 복무를 마치고 고향으로 돌아왔을 때, 그녀는 부모님이 이미 세상을 떠났고, 집은 텅 비어 있었습니다. 이러한 상황은 그녀의 삶에 큰 변화를 가져왔습니다.
꽃제비 생활과 결혼
부모님을 잃고 집을 떠난 이순실 씨는 생존을 위해 꽃제비 생활을 시작했습니다. 당시 그녀는 경찰에 붙잡혀 오빠 집으로 보내졌지만, 오빠의 집도 형편이 좋지 않았습니다. 물 한 그릇으로 끼니를 때우는 상황에서 그녀는 더 이상 그곳에 머물 수 없다고 판단했습니다.
오빠는 그녀에게 친구와 결혼하라고 제안했습니다. “여자는 세간살이를 해가야 하는데 친구니까 이해할 거야”라는 말에 그녀는 결혼을 결심했지만, 빈손으로 시집갔다는 이유로 시댁에서 멸시를 받았습니다. 시누이는 그녀의 뺨을 때렸고, 남편은 점점 그녀를 무시하기 시작했습니다. 결국 그녀는 이런 학대를 견디지 못하고 집을 떠났습니다.
딸의 출산과 탈북 결심
집을 나온 그녀는 길에서 딸을 출산했습니다. 딸을 안고 다리 밑에서 살며 구걸로 생계를 이어갔습니다. 지나가던 할머니가 그녀에게 “아기를 데리고 시장으로 가라. 얼어 죽는다”고 말했지만, 그녀는 출혈로 힘든 몸을 이끌고 딸을 안고 구걸을 시작했습니다. 딸은 어머니의 고난을 알았는지, 사람들이 주는 음식을 먹지 않고 어머니에게 건네주곤 했습니다. 그런 딸을 보며 그녀는 탈북을 결심하게 되었습니다.
“내 딸에게 이런 미래를 물려줄 수는 없다”는 생각이 그녀를 움직였습니다. 하지만 탈북은 쉽지 않았습니다. 그녀는 국경을 넘는 과정에서 수많은 위험에 직면했고, 8번이나 북송되었습니다. 북송될 때마다 감옥에서 고문을 당하며 손바닥이 찢어지고 온몸이 멍들었습니다. 하지만 그녀는 딸과 함께 자유를 찾겠다는 희망을 놓지 않았습니다.
중국에서의 인신매매와 딸과의 생이별
탈북 과정 중, 그녀는 중국의 인신매매단에 붙잡혔습니다. 그녀와 딸은 강제로 분리되었고, 딸은 인신매매단에 의해 팔려갔습니다. 당시 딸은 겨우 3살이었으며, 그녀는 딸이 끌려가는 모습을 지켜볼 수밖에 없었습니다. 딸은 중국 돈 3000위안(한화 약 18만 원)에 팔렸고, 그녀는 그 이후로 딸을 다시 만날 수 없었습니다.
이 사건은 그녀에게 큰 상처로 남았습니다. 딸을 잃은 충격으로 정신적으로 큰 고통을 겪었지만, 그녀는 딸이 살아있기를 바라며 하루하루를 버텼습니다. 그녀는 “딸을 볼 수만 있다면 내 삶은 끝난 것 같다”며 간절함을 표현했습니다.
5. 한국에서의 새로운 시작
2007년, 몽골을 거쳐 마침내 한국으로 입국한 그녀는 새로운 삶을 시작했습니다. 하지만 한국에서도 그녀의 삶은 쉽지 않았습니다. 아무런 자본도 기술도 없는 상태에서 그녀는 공사 현장 식당에서 일하며 하루하루를 버텼습니다.
그녀는 “처음 몇 년은 실패의 연속이었다”며 여러 번의 좌절을 겪었지만,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탈북민들과 함께 음식을 나누며 요리 실력을 발견한 그녀는 북한 음식을 남한 소비자들에게 소개하기 위해 사업을 시작했습니다. 평양냉면, 개성떡, 백김치 등 전통 북한 음식을 현대적으로 재해석하며 그녀의 사업은 점차 성장했습니다.
성공적인 사업가로의 도약
현재 그녀는 연 매출 100억 원을 달성한 성공적인 CEO로 자리 잡았습니다. 그녀가 설립한 식품회사는 북한 음식을 밀키트로 제공하며 소비자들에게 큰 인기를 끌고 있습니다. 또한, 그녀는 방송에도 출연하며 자신의 이야기를 나누고 있습니다. ‘사장님 귀는 당나귀 귀’, ‘이제 만나러 갑니다’와 같은 프로그램에서 그녀의 유쾌한 말솜씨는 많은 사람들에게 감동을 주었습니다.
딸을 향한 끝없는 그리움
이순실 씨는 여전히 딸과의 재회를 가장 큰 소망으로 가지고 있습니다. 그녀는 딸의 빈자리를 채우기 위해 집 안을 인형으로 꾸미며, 딸에 대한 그리움을 품고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녀는 “딸이 어딘가에서 살아있기만을 바란다”고 말하며 희망을 놓지 않고 있습니다.
탈북민을 위한 사회적 인식과 지원의 필요성
이순실 씨의 이야기는 단순히 개인의 경험이 아니라, 탈북민들이 겪는 고난과 어려움을 대변합니다. 탈북민들이 안정된 삶을 살 수 있도록 사회적 지원과 인식 개선이 필요합니다. 그녀는 “우리는 더 이상 숨지 않아야 한다”며 탈북민들이 자신의 목소리를 낼 수 있는 사회가 되어야 한다고 강조했습니다.